쿠데타에 의해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그가 죽자 또 다른 군인이 정권을 잡고 그의 친구가 또 정권을 잡고 그 밑에 빌붙던 문민이라는 정권까지 줄줄이 해먹고 나서야 우리는 TV드라마에서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최수종이 분한 태조왕건의 감동은 잊히지가 않는다. 반만년역사에 길이 남을 우리의 옛 국호가 있다면 조선이란 이름과 세계가 우리를 부르는 고려(Korea)가 있는데 개성과 평양을 수도로 하는 고려, 고구려의 연구나 예찬은 그 시절에 금기시 되던 일 이였다. 지금은 세월이 좋아져 고구려의 역사는 물론이고 우리의 역사로 쳐야할지 말아야할지 아리송한 발해까지 폭넓게 TV나 서적으로 다루어 주고 있으니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

1986년 수안보온천으로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지금도 기억나는 곳이 문경세재의 관문들과 탄금대, 충주호, 그리고 한반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의 비인 중원고구려비이다. 1979년 4월에 세상에 알려졌다고 하니 발견되고 8년 만에 그것을 보게 된 것이다. 

건립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마멸돼서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지만 5세기 전반 광개토대왕대부터 6세기 중·후반 평원왕대(559~590)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최근에 앞면 첫째 줄의 “고려 태왕의 할아버지 왕이 령을 내렸다高麗太王祖王令”라는 구절이 새롭게 판독됐고, “12월 3일 갑인十二月三日甲寅”이란 간지와 날짜를 고려해 449년(장수왕 37)으로 보는 견해가 폭넓게 지지를 받고 있다. 광개토왕대 고구려의 중원 진출을 아들 장수왕이 기념하기 위해 비를 건립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 영토 내 고구려 군부대의 장군 新羅土內幢主’이라는 표현은 고구려 군대가 신라 영토 내에 주둔했다는 점을 알려준다.

부여에서 독립해 나온 압록강변 조그마한 수렵국가 고구려가 점차 북방의 유목민족들과 동맹과 전쟁을 반복하여 커가는 과정, 그리고 중원의 패자, 한나라 수·당제국과 끝임 없이 전쟁을 펼쳐가며 700년간이나 나라를 유지시킨 생존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고구려 자체의 이야기가 반이라면 중국의 역사가 반이 기술되어있다. 그만큼 고구려는 중국 북방의 국제정세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장안 북쪽에서 태동된 수·당제국이 국운을 걸어가며 집요하게 정벌해야 했던 이유들이 설명되어 있다.

책의 정점은 역시 수양제와 당태종의 정벌을 격파한 부분이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과 양만춘의 안시성전투를 읽을 때 고구려인들의 기상과 지혜가 손으로부터 마음까지 공감되어 전해온다.

연개소문이 죽고 아들들의 다툼 때문에 멸망하게 되는 고구려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들어 그 시대 군마의 이야기 등 어려울 수 있는 역사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좋게 써놓았다. 여태껏 알쏭달쏭 발만 살짝 담가놓았던 고구려의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역학관계에 있던 북쪽의 유목민족들, 중국을 중심으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던 주위의 여러 나라들, 신라와 백제의 이야기까지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요즘 드라마 만드는 사람들!
역사드라마는 단순히 역사드라마가 아닌 배우는 학생들의 교과서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AND